Opening New Door2023
2023. 6. 7 - 2023. 6. 30
Culture Salon 5120, Seoul, Korea

세계에 대한 회화적 은유 – 전영진의 회화에 대한 단상


붉은 사각형과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꽃, 보랏빛 마름모꼴이 만들어 내는 하늘과 물결, 반원형의 언덕. 전영진의 회화는 다채로운 색을 가진 기본 도형들의 기하학적 구성으로 이루어 진다. 세계의 풍경은 그의 그림에서 때로는 점으로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면으로 이뤄진 조합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작은 단위로 번역된 세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풍경이라는, 시간을 관통하는 회화의 주제
전영진의 회화는 이렇게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풍경을 이룬다. 풍경은 인간이 오랫동안 그려온 주제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풍경화가로서 명성이 높았던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는 신고전주의 역사적 풍경화의 전통 속에서 자연의 묘사를 바탕으로 특유의 서정적 감성을 보여주었고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풍경화는 인간의 실존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풍경화는 파토스의 결정체이자 색채 실험의 장이었다. 이렇듯 풍경화는 회화의 장르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시공간 속에서 회화의 양식 변화를 보여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전영진이 풍경을 그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 짧지 만은 않은 경력 속에서 전영진은 회화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업은 대개 세 가지 지점에서 논의되었는데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인 평면성, 개념 미술적 성격, 팝 아트의 양식적 특징을 공유하는 점이 그것이다.[1] 근작에서 역시 회화의 평면성과 밝은 색채의 가벼움이 주는 팝 아트적인 성격은 여전히 유지되는 한편 분할된 화면을 기하학적 요소들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 형식적인 특징으로 두드러진다. 인상주의의 붓 터치, 북부 르네상스 풍경화의 촉각성과 같이 하나의 양식으로 번안된 그의 시각 언어가 우리의 시각을 간질인다.

픽셀, 디지털과 회화
전영진이 사용하는 이 작은 기하학적 단위들은 오늘날 디지털의 시각언어를 구성하는 구성요소, 픽셀과도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영진의 풍경화는 회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프리즘일 뿐만 아니라 21세기 인간의 기술적 환경과 지각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이미지로 넘쳐 난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의 대부분이 제작단계에서 내지는 결과물의 수준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은 원하는 순간에 어떠한 이미지도 픽셀로 번역된 이미지로 내 앞에 데려다 놓는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나 그리기 어플리케이션으로 어떤 순간에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전영진의 회화는 시각 예술 양식의 번역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오늘날의 보편적 언어로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기도 하다.

망막의 회화?, AI, 가상이미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게 시각 자극이 절대적인 인상주의 회화와 같은 망막의 회화(retinal painting)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2] 오늘날 뒤샹이 살아있다면 망막의 수준에서 경험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달리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을 가득 채우는 시각 이미지들은 시각 지각 단독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어떤 정보든 이미지나 글을 넘어 유튜브에서 동영상의 형태로 찾아보는 일이 수월해진 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이미지들의 대부분은 시각적 정보 이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동영상이라는 형태는 시간 축이 결합되어 시각의 층위를 중첩 시키고 청각 자극을 동시에 자극한다. 나아가 인공지능과 이미지 기술이 결합된 가상 인간 모델이 여러가지 인간의 조건과 특성들을 넘어서서 광고계를 잠식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지는 다른 감각 뿐만 아니라 다른 지능 또한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 동시대 미술은 다종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지고 미술이 애초에 시각만의 배타적인 감각의 예술이었는지 재고하기도 있다. 사운드 아트의 전문가이기도 한 큐레이터 케일럽 켈리(Caleb Kelly)는 애초에 미술이 시각을 넘어서 있었다고 주장한다.[3] 예를 들어 폭포를 그린 풍경화는 우리에게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줄기의 청각 경험과 시원한 물보라의 촉각 경험까지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계에 관한 회화적 번역
이러한 오늘날의 조건과 상황들 속에서 전영진의 픽셀 풍경화는 세계에 대한 다른 이해를 가능케 한다. 반듯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번역된 다채로운 색의 세계, 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번역된 풍경은 오늘날의 풍경화를 제시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21세기의 세계가 어떻게 우리에게 재현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분해해서 보여주는 렌즈가 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회화의 꿈은 삼차원의 세계를 이차원의 평면에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었다. 모더니즘 회화는 캔버스 위에 회화를 위한 회화라는 내적 세계를 표상했다. 이제 전영진의 회화에서 회화의 꿈은 삼차원의 공간의 재현, 회화의 내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공간을 구성하는 대상, 그 대상에 대한 인식, 인식을 구성하는 달라진 내용까지도 연역해 내는 다른 평면으로 또 하나의 층위를 더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오늘의 변화를 그리고 내일을 상상하는 또 다른 체험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 강수미, 「그린버그의 강령, 개념미술의 언어, 팝 아트의 유희가 결합된 회화 변종 – 전영진의 ‘캔버스를 운용하는’ 그림들」, 2011 전영진 개인전 《Canvas Play》 서문, http://www.arthub.co.kr/sub01/board03_view.htm?No=3214.
[2] 마르셀 뒤샹의 1968년 BBC 인터뷰, https://vimeo.com/185187017.
[3] Caleb Kelly, Gallery Sound, London: Bloomsbury, 2017.

- 배혜정(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홍익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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